연재코너-2) 美 푸드트럭은 우리의 포장마차

쏭기자
2017-05-19
조회수 444

지금까지 푸드트럭은 전혀 없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올시다’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칭송하는 ‘스티브 잡스’의 장기가 무엇인지 아는가? 필자는 개인적으로 ‘모방의 천재’라고 말하고 싶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잡스는 ‘창조적 모방의 대가’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창조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유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드느라 시간을 보내는 건 잡스에게 만큼은 사치와 같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발상의 전환으로 기존에 개발된 것들을 보완하면 그만이다.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성경에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전도서 1장 9절)

푸드트럭도 그런 관점에서 봤으면 좋겠다. 어차피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기기나 산업은 생활의 편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다. 푸드트럭 역시 유에서 유를 찾는 과정에서 생겨난 비즈니스 모델이다. 길거리 음식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보면 푸드트럭은 전혀 새롭지 않다.

우리가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보는 포장마차가 전형적인 푸드트럭이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푸드트럭에 대해 ‘음식을 판매하는 트럭, 아이스크림 트럭을 보함한 냉동, 포장 식품을 판매하는 이동식 레스토랑’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식당은 무슨…. 너무 거창하다. 하나마나한 소리다. 그냥 길거리 음식을 수준으로 이해하자. 그렇게 생각만 해줘도 과분하다.  혹시 한 해 전 세계에서 테이크아웃, 정크푸드, 패스트푸드를 먹는 사람이 얼마인지 생각해봤는가?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약 25억 명이 매일 길거리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전임 박근혜 정부가 마치 엄청난 신산업을 발견한 것처럼 떠들어 댔지만, 솔직히 말하면 푸드트럭은 진작부터 관련 규제를 풀었어야 할 시장이다. 현재 미국에만 300만대 이상의 푸드트럭이 영업 활동을 하고 있다. 유에서 유가 창조되면 더 큰 파이가 생겨난다는 것을 박근혜 정부는 몰라도 정말 몰랐다. 그러니, 지금 거기에 들어가 있지….

푸드트럭의 원조는 美 서부개척시대 부터 거슬러 올라가..

그럼 혹시 푸드트럭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아는가? 학계에는 대략 19세기 미국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남북전쟁이 끝난 이후 많은 이들이 서부 개척에 나서면서 육식 수요가 커졌다. 서부 개척으로 수입이 늘어나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 때 오지 산간까지 이동수단이 발달했으면 얼마나 좋았으련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당시 미국 사회는 철도가 산업 발달과 함께 했다. 기차가 닿는 지역에서야 소득이 늘어나면서 맛있는 소고기를 먹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한 곳은 빵이나 야채로 식사를 대체해야 했다.

급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고기가 먹고 싶은 사람들은 어떻게 했겠는가? 당연히 인근에 사는 가축업자를 찾아갔을 것이다. 그나마 가축업자가 인근에 산다면 다행이겠지만, 멀리 산다면 어떻겠는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암울한 얘기다. 반대로 소떼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도 끼니를 때우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푸드트럭이라는 신생 비즈니스는 이렇게 탄생했다.

문헌에 따르면, 1866년 찰스 굿이라는 목장 주인은 미 육군이 쓰다버린 마차에 부엌시설을 만들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찰스 굿은 우물이 급한 사람이다.

뒷면에 나무 박스를 매달고, 여기에 냄비와 프라이팬, 식기류, 향신료 등을 담았다. 냉장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탓에 음식을 만드는 데 쓸 식재료는 말린 콩, 커피, 옥수수 가루 등을 실었다. 신선한 과일이나 야채, 계란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이게 오늘날 차량의 한 카테고리로 성장한 웨건(Wagon)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척 웨건(Chuck Wagon)이다. 척 웨건은 서부시대 아이콘 카우보이들에게 인기였다. 이들이 애용하면서 푸드트럭은 서부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인들에게 푸드트럭은 서부 시대의 애환이 담긴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우리가 포장마차에서 즐기는 한 잔의 소주에 서민의 애환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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