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코너-3)푸드트럭의 선조 美 런치웨건,척웨건

쏭기자
2017-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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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우리는 찰스 굿나잇이 개발한 ‘척 웨건’이라는 형태의 푸드트럭을 살펴봤다. 미국에서 푸드트럭의 원조로 꼽히는 것이 척 웨건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푸드트럭이 개발된 곳은 1600년대 말 미국 동부의 심장부 뉴욕이다.

돈을 찾아 뉴욕으로 몰려든 사람들에게 한 끼 식사를 간편하게 때울 수 푸드트럭은 안성맞춤의 식사 공간이었다. 당시 뉴욕은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로 북적거렸다.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많아 뉴욕(New York)보다는 뉴 암스테르담(New Amsterdam)으로 불렸던 것도 그 시절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푸드트럭은 기존 업자들의 반발과 행정당국의 규제에 부딪힌다. 혁신적인 제품이 늘 기존 사업자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건 그런 면에서 볼 때 숙명과도 같은 일인지 모른다. 

이는 ‘단순하고 저렴한 제품이나 서비스로 시장의 밑바닥을 공략한 후 빠르게 시장 전체를 장악하는 방식의 혁신’을 말하는 ‘파괴적 혁신’ 이론과 맥이 닿아 있다. 오늘날 세계를 대표하는 경영 구루인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 교수가 만든 용어인 ‘파괴적 혁신’은 푸드트럭의 숙명을 보여준다.  

모든 규제가 만사가 아니듯 이들은 재빠르게 대안을 찾았다. 그들은 규제가 넘쳐나는 동부보다는 자유로운 영업이 보장된 서부를 대안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뉴욕과 지리적으로 대각선을 그리는 서부 텍사스로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난다. 이들이 서부에서 비교적 빨리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찰스 굿나잇의 척 웨건이 유명세를 타고 있어서였다. 

당시 척 웨건 형태의 푸드트럭은 미 육군의 보급 수단으로까지 개발돼 인기를 얻고 있었다. 척 웨건의 성공 요인은 지난번에 자세하게 소개했으니 생략토록 하겠다. 서부 텍사스를 중심으로 척 웨건 형태의 푸드트럭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변변한 식사조차 하지 못하는 일꾼들에게 찾아오는 서비스 형태의 푸드트럭은 최고의 인기 품목이었다.

찰스 굿나잇이 개발한 ‘척 웨건’이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푸드트럭이라면, 동부지역에서는 1872년 식품 유통업자 월터 스콧이 개발한 ‘런치 웨건’이 첫 시작이다. 스콧의 푸드 트럭은 천으로 천정을 대고 마차 곳곳에 작은 창문을 냈다. 스콧의 추종자들은 미국 북동부에 있는 메인·뉴햄프셔·버몬트·매사추세츠·코네티컷·로드아일랜드 등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주로 장사를 했으며, 주로 이들 지역 내에서 신문을 파는 곳을 판매점으로 정했다. 신문을 보면서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곳에서는 이들은 손님들에게 샌드위치와 파이, 커피 등을 팔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콧을 따라한 사업자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예일, 하버드, 프린스턴, 코넬 등 주요 동부 대학의 학생 기숙사 근처에서도 소시지를 파는 이동식 음식점이 생겨났는데, 이것이 유명한 도그 웨건이다. 핫도그를 판매한다고 해서 이름이 이렇게 붙여졌다.  

일부에서는 1880년대 토마스 버클리가 동부에서 푸드트럭 형태의 장사를 했는데 이것이 사실상 미국 전역으로 퍼졌다고 주장한다. 그의 푸드트럭은 화이트하우스 카페 또는 올빼미집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다. 당시 동부에서 점심시간에 음식을 파는 것은 일반적인 모습이 됐다. 그랬던 푸드트럭이 심야시간으로 영업시간을 늘린 것은 올빼미라고 불리는 야간 근로자들의 주로 애용하는 음식코너로 바뀌면서부터다. 마차에서 준비된 음식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또 다른 학설은 1893년 경 금욕적인 신앙관을 가진 교회 주변에서 음식이 판매됐다는 것이다. 당시 보수적인 분위기의 교회들은 해가 떨어진 오후 7시30분부터 해뜨기 전인 새벽 4시까지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낮 시간에는 금식 등 금욕적인 생활을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밤 시간이 요긴하게 성도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것이 바로 푸드트럭이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푸드트럭을 야식(Night Lunch)웨건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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